1년동안 유예기간 두고 해당 시행령 조정 등 걸쳐 소급 적용
정부 입맛대로 언론 기준 정할 순 없어 독자가 정해야 바른 언론
[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 언론 묵시록(默示錄)이 있다. 알권리의 보장으로 가면을 쓴 채 정의를 사고 팔기도 하고, 몸을 팔기도 하며 심지어 개(犬)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회 공기가 혼란과 혼탁의 연속이다. 2015판 '신 보도지침'이 공론화 되면서 마치 5인 이하 미디어는 언론도 아니라는 법제화로 통제적인 박제(mounting)를 꾀하고 있다. 단어적 풀이로 보면 낮뜨겁지만, 지금 흐름은 권력이 국민들을 완전히 제압하는 분기점으로 도출되고 있다.
어디서 부터 매듭을 엉켰는지, 짐작되는 부분은 확신하지만 굳이 백주대낮에 홀랑 벗은 듯 알릴 필요는 없겠다.왜냐하면, 진실와 정의는 권력이나, 물력보다 더욱 강해 꼭 밝혀진다는 공식때문이다.
재계 30위권 대기업 홍보 임원은 이번 신문법 개정에 대해 솔직함을 내보였다. "늘 초긴장 모드죠. 어정쩡한 언론(인터넷신문이나 중앙지 할 것 없이)때문에 피해본 사례도 있지만, 요즘은 기자들이 광고를 하는 세상이라,...한편으로 언론과 함께 걸어와 우리도 살만 하지 않습니까. 신문법 개정은 100% 다 좋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번 법에 절대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간지 경력 20년차에 에너지 전문지를 발행한 그는 ""살 판 났어요. 돈 푼깨나 쥐는 공룡언론과 대기업들 입맛대로 법을 고쳤으니, 이젠 별 볼일 없는 귀찮은 코딱지만한 이들(언론)들이 사라지니 다리 좀 뻗고 잘 수 있겠죠." , 그러면서 "어디 쉽게 호락호락 죽을 것 같아요. 펜슬을 녹슬지 않아요." 그는 흥분된 말투속에는 정부에 대한 서운함과 우리 언론시장에 척박함을 동시에 토로했다.
언론 미디어 5인 이하는 언론 취급도 하지 않겠다는 국회 법개정안에 통과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법안을 앞으로 1년동안 유예기간 두고 해당 시행령에 관련 조정 등을 걸쳐 소급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문득 낙엽 떨어진 나무를 보다 버락 오바마가 추천한 '앵무새 죽이기' 영화가 스친다.
이 영화는 많은 메시지를 준다. 인간으로서 우린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공통의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던진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변호사 백인 애티커스 핀치가 성폭행 누명을 쓴 흑인을 변론하는 장면을 통해 오랜만에 사회의 정의가 왜 필요하는지, 소수의 힘 없는 약자에게도 의견과 존중이 필요함을 역설로 담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살벌한 경쟁구도로 '죽기 아님 살기'식 흑백논리에서 스스로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중심에서는 틈이 없는 밀착이다. 국민들의 생각을 정화하는데 큰 쓰임새로 언론만한 조직은 없다.
속칭 언론밥 좀 먹었다는 이들은 "티브 뉴스, 조중동 등 보수 매체들 기사를 반대로 읽으면 그게 진실"이라는 것도 통용화된 지 오래다.
이런 부작용으로 염증의 사회, 염증의 정치, 염증의 학교, 염증의 언론에 지쳐 법적 보호망조차 거부하고 이 땅을, 깊은 산속과 섬으로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를 두고 항간에 낙오자, 패배자로 비웃을 수 있는 공존의 현실도 사회 뒷면, 이 나라 정치, 이 나라 대기업들이다.
넘쳐나는 미디어 세상, 신문산업이 다변화했지만 한편으로 쇠락의 고리도 끊질 못하고 있다. 언론종사자들은 특별한 밥벌이용 기술이 제한적이다 보니 기웃거렸던 곳도 결국 골방수준의 미디어 간판을 내걸 수 밖, 죽도록 일해 다쓴 건전지 버리듯 명퇴를 강요한 것과 엇비슷하다. 다른 분야는 일자리 창출이니 하며 관심도가 높지만, 언론 종사자들을 위한 보장된 일자리 만드는 정부는 없었다. 그만큼 시장도 좁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팽창한 것도 부인할 순 없다. 이젠 오히려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생존권 문제다. 쏟아진 실업자(?)들이 술잔과 인터넷, 종이신문의 경계에서 방황했고 또다시 처자식 먹여 살릴 심정으로 택한 운명적인 힘없는 미디어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맨얼굴이다.
흑백논리에 파묻힌 언론산업, 5인 이하 구성원은 떨어진 낙엽정도로 보는 시각은 존재한다. 과거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언론들은 무수히 많았고, 현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언론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특화된 찬양일색, 자존감인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는 회개는 오히려 측은할 뿐이다.
국내 유수한 역사의 언론들 판박이는 발행목적 외 부대사업을 빙자한 결탁의 본산이 바로 언론이란 점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순수한 취재만으로는 언론 본업을 지켜내기 버거움도 있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적자 폭을 땜질해야 생명을 연명하는 상업화 언론 대열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구조다. 이런 풍토때문에 수많은 미디어를 어느 정도 청산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시장경제논리(?)에 백기를 든 족벌언론들이 쌍수를 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약육강식의 표본인 족벌언론 대한민국, 모조리 핑계다. 언론은 권력과 어깨를 견주려 해온 야수의 발톱을 감춘 망말이다.
해외 명칼럼리스트들이 즐비한 창간 100년된 미디어들의 경영기법은 사뭇 다르다. 기사와 경영을 철저하게 분리다. 광고에 목말라 정부와 민간기업으로부터 SOS를 공문을 날리지 않는다. 특집기획물을 빙자한 광고협찬, 행사를 빙자한 광고협찬 공문을 쉽게 분쇄기에 집어넣을 수 없는 언론에 대한 뒷감당은 익히 기업 홍보팀은 익숙하다. 기업과 언론, 정부는 하나다.
이들이 상호간 의지하고 공유하며 무얼 먹고 살고 어떻게 버틸 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바. 해외 언론들은 자신들의 기사를 유료화에, 광고영업 자체가 없는 순수 미디어들 등장은 국내 미디어산업의 또 하나의 과제다. 이들은 철저한 독자중심의 경영에서, 독자 중심은 곧 기사다. 옳고 그름 신뢰의 판단할 몫은 그 다음이다는 철학은 시사한 바가 크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덩달아 언론산업도 도미노 현상이다. 세를 키워야 하는 언론일수록 더 큰 시장에 탐을 내야 하고 5인 미디어나. 기존 더 큰 언론들이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군소 신문사들은 눈물로 펜을 눌려 써야 할 판이다.
국민 알권리를 악용해 간간히 돌연변이화된 쓰레기 기사들이 오너를 괴롭히고, 정책을 흠집내는 경우도 상당했다. 또한 기득권 언론들은 자신의 잘잘못은 숨긴 채 이구동성으로 5인 미만의 미디어의 본질만을 퇴색됐으니 "껍데기는 가야"며 권력 밑에서 나팔을 불었다.
언론의 잣대에서 보는 앵무새 노릇하는 것과 이런 앵무새를 죽이기와 간극은 분명 다르다. 국가의 경쟁력, 기업의 생산성 극대화, 정부 정책에 딴짓걸기나 사다리 걷어차기식 언론도 분명 언론이다. 그러나 올바른 보도 정신을 흔들어놓고 이를 돈으로 바꾸려는 의도는 제도권에서 보호할 필요는 없다.
과부하 덩치가 너무 커진 이유만으로 전국적으로 6000여 개 매체들 모두 조푹수준은 아니듯이, 어느 언론사가 5인 이하로 규정한 산술적인(?) 논리에 동의할 이들 몇이나 있겠는가.
언론의 자유는 풀뿌리 작은 언론으로부터 나온다. 정직하고 올바른 보도의 5인 미디어는 전국적으로 6000여 개가 넘을 지도 모른다.
전경련의 뿌리를 둔 광고주협회는 밝힌 유사언론, 사이비 언론의 기준표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 협회는 자체 운영한 인터넷 신문사 기자들이 전시에는 협회 직원이 기자로 바뀐다. 이건 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이들이 주장한 5인 미디어 시장을 정화하고 쏚아내는 논리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 알권리와 이율배반적인 악법이다.
권력 유지에 큰 보호막은 언론 길들이기, 주인말 잘 따라하는 새로운 앵무새를 키울 속셈으로 등장한 종편 히스토리는 모르는 바 아니다. 기형적이며 변형된 창궐은 넘쳐나는 댓글과 온갖 즉물적인 반응을 쏟아진 가장 민감하게 받는 쪽은 오금이 저린 정치, 기업들이다.
물론 5인 이하의 언론사들도 사회로부터 편견의 숲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스스로 자정하고 새로운 생존 모색을 과감하게 융통합 창조경제에 맞게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이는 훗날 또 다른 역습에 대비를 위한 방어장치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정서는 가진 자 편에서만 줄서기는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거대 자본 언론과 협작한 이미 악법이 된 경우처럼 백인이 흑인을 바라보듯 하지 말기 바란다.
막장드라마 처럼 좋은 언론 나쁜 언론은 기준, 때묻지 않는 상식적인 논리에서 바라보고 계도하면 공존하는 가치를 찾아야 한다.
선입견에서 빠져나와야 할 군소 미디어 속에는 옆집 이웃이며, 연인, 가족이다. 힘이 없다고 무조건 단죄해선 안된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처럼 그 끔찍한 깃털을 뽑고 부리를 꺾은 채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막는 것은, 2015판 신 보도지침 언론의 묵시록이 눈물로 스며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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