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데일리 온라인팀] 국제사회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마침내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UNFCCC COP21)를 통해 새로운 기후체제의 시작을 알리는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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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 이승준 부연구위원 © 환경데일리 |
그동안 당사국 주도의 협상 과정이 우려를 낳을 만큼 느린 진전을 보였으나, 협약 사무국과 당사국들은 코펜하겐 당사국총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바탕으로 협상 타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파리협정의 타결을 시작으로 국제사회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글로벌, 국가, 지역 등의 다양한 수준에서 정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파리협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와 동일하게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니지만 협약의 모든 당사국에게 적용 가능하고,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적응 등 각 국가가 정하는 세부 계획에 따라 이행되는 기후변화 대응체계라는 점이다.
이는 교토의정서가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감축 의무를 규정했고, 그 결과 일부 국가가 탈퇴하거나 이행이 준수되지 않은 실패 사례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17차 당사국총회에서 결정된 더반 플랫폼(Durban Platform)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중심의 기후변화 대응에서 벗어나 적응, 재정, 기술, 투명성, 역량배양 등의 사항을 포함해 종합적인 기후변화 대응 체계를 수립했다는 데 큰 의의를 갖는다. 그중에 적응은 새로운 기후체제에서 감축과 동등한 수준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파리협정의 도출을 위한 만 4년 간의 실무 협상회의를 통해 당사국들은 적응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협정문에 포함할 장기적 측면의 적응 관련 핵심사항을 논의했다.
우리나라가 2014년에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안한 바 있듯이 파리협정은 글로벌, 국가, 지역 등 어떤 수준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글로벌 적응목표를 수립했다. 즉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고 적응 역량과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사항이 정성적 목표로 채택됐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각 당사국이 개별적 차원에서 적응계획을 수립·이행하고 국제적으로는 당사국들이 공동으로 협력하고 지원하는 사항이 협정문에 담겼다. 각 당사국의 적응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사무국에 보고해 정보 공유에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적응과 관련해 협상 과정에서 가장 쟁점이 되었던 사항은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에 관한 문제였다. 손실과 피해는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과 관련된 태풍과 같은 극한 기상 현상이나 해수면 상승과 같이 서서히 발생하는 현상에 따른 손실과 피해를 의미하는데, 그동안 협약에서의 논의를 통해 손실과 피해를 적응의 일부로 포함시키려는 선진국과 별개로 다루고자 하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왔다.
개발도상국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제16차 및 제19차 당사국총회에서 각각 칸쿤합의(Cancun Agreement)와 바르샤바 메커니즘(Warsaw International Mechanism)의 설립 등을 통해 손실과 피해 문제를 다루는 체계를 마련했다.
개발도상국은 새로운 기후체제에 관한 협상을 통해 손실과 피해 문제를 영구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파리협정 타결이 임박했던 2015년 12월 둘째 주까지도 손실과 피해에 관한 최종 합의문은 예측하기 어려웠다.
사무국과 이해 당사국의 양보와 타협으로 결국 개발도상국의 요구대로 파리협정에 손실과 피해에 관한 사항을 적응과 별개의 조항으로 삽입하는 대신 선진국의 요구대로 당사국총회 결정문에 기존의 바르샤바 매커니즘을 지속한다는 내용을 언급하는 것으로 협상이 마무리됐다.
선진국이냐 개발도상국이냐를 떠나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적응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기후변화 협약에서 적응을 언급할 때는 논의의 초점이 조금 달라진다.
협약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CBDR-RC1)은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과 각 당사국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원칙에 따라 협약에서 언급되는 적응 문제는 과거 기후변화의 책임을 갖고 있는 선진국이 기후변화의 영향은 크게 받으면서 적응 역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을 어느 정도의 능력에 따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적응도, 손실과 피해 문제도 CBDR-RC의 원칙을 바탕으로 이해하면 지원 문제로 줄다리기를 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이 이해된다. 비록 파리협정의 채택을 통해 새로운 기후체제가 출범하는 계기가 마련됐지만, 적응 및 손실과 피해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지원 문제가 핵심사항으로 언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기후체제의 근간인 파리협정의 발효 시점이 멀지 않았다. 이제 우리나라도 파리협정이 목표하는 바와 당사국의 의무를 이해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외적으로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적응 및 손실과 피해와 관련해 파리협정에 대한 몇 가지 핵심적인 대응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후변화 적응을 여러 정책이나 프로그램에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록 우리나라는 최근 제2차 국가기후변화 적응대책을 수립했지만, 앞으로는 적응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이미 수립된 정책을 이행하고 모니터링·평가하는 과정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후영향과 취약성을 과학적으로 평가해 적응 우선순위를 객관적으로 선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도 해당 지역의 고유한 적응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도록 전통 지식의 발굴이나 기타 연구를 통해 정보를 창출하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인식을 제고함으로써 적응 행동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적응목표로 언급되고 있는 회복탄력성 강화는 파리협정뿐만 아니라 유엔의 지속가능 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나 생물다양성 협약의 아이치 목표(Aichi Biodiversity Targets) 등 국제사회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강조하고 있는 사항이다. 생태계 및 사회·경제계의 회복탄력성 의미를 정립하고, 기후변화 회복탄력성을 평가하고 강화하는 전략과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극복하기 위한 지원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녹색기후기금(GCF)에 1억 달러를 공여하기로 약속했지만, 재원뿐만 아니라 적응과 관련한 우리의 축적된 기술과 정보를 제공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손실과 피해 문제가 단순히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정지원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손실과 피해에 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도록 국제협력을 통해 연구와 관련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적응과 관련해 부족한 민간부문의 참여와 투자를 활성화 하도록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파리협정문은 각 당사국이 주기적으로 적응 관련 보고서를 갱신하고 사무국에 제출하는 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내외를 포괄하는 차원에서 적응 행동의 장기 비전을 설정하고, 적응 보고서의 제출 형태와 보고서에 포함할 내용을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사무국의 등록부를 통해 관리되는 당사국의 적응 관련 보고서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적응 계획 및 활동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기후체제에 발맞춰 국내 적응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적응 행동을 선도하기 위해 적응법 제정을 고려해야 한다. 적응 관련 법률은 그 특성상 강제의 성격보다 지원의 성격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파리협정의 목표와 원칙을 충실히 담는 동시에 국내외의 적응 및 손실과 피해에 관한 핵심사항을 언급함으로써 새로운 기후체제가 지향하는 취약성 감소와 적응 역량 및 회복탄력성 강화라는 글로벌 적응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협정은 협약의 모든 당사국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포괄적인 기후변화 대응체계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철저한 이행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고려해 기후변화 적응 및 손실과 피해의 장기적인 이행 전략과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파리협정을 선도적으로 이행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실행 가능한 단기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후체제의 큰 틀이 마련된 만큼 앞으로 우리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길 기대해 본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이승준 부연구위원
용어설명
요CBDR-RC :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and Respective Capabilities,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및 각자의 능력’이라는 기후변화협약 상의 원칙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입장에서 중국이나 멕시코, 브라질 등의 배출량과 경제력 등을 향후 감축 분담 논의에 반영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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