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더 이상 4월은 잔인하지 않다. 동서남북, 땅과 하늘은 일제히 긴 잠에서 깨어난 후 간절함이 더욱 커지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도시에서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 답게, 자연을 보기 위한 만남은 사람과 사람만의 있는 것이 아니였다.
기차에 몸을 싣고 마냥 달린다. 멈추면 내리고, 출발하면 다시 타기를 반복한 봄 기차여행은 봄바람들이 어찌나 샘을 내는지 봄꽃잎 한 잎 두 잎 물거품을 이룬다.
봄은 천박할수 없다. 무얼 먹고 마셔도, 냇가물은 고로쇠물처럼 온 몸에서 생기를 돋아내는 마법의 시계가 몸속으로 퍼지며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 옛날 비둘기호, 무궁화호 타는 승객에게 10분의 정차하는 잠깐 호사를 누릴 서대전역 우동 한그릇, 그 맛은 가장 청춘들이 데이트 코스중 하나로 마시는 핫한 카라멜 마키야토 커피맛 그 이상이였을 것이다.
봄, 게으름을 피지 않았기에 연두색 나비 날개짓하며 고개를 내민 온갖 새싹은 단 한번도 봄햇살을 만난 적이 없을 것, 그래서 첫 봄에서 늦가을속으로 달려가는 동안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잎사귀에 줄기에 꽃과 열매로 보내는지 모른다.
정호승 시인은 '봄길'을 통해 봄마중 순례길을 이렇게 말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시인의 봄길을 따라가 봤다.
남쪽바다 큰 섬안에 제주푸르미농원 양파수확이 한창이다. 긴 겨울내내 동면을 했으니 양파가 실하고 좋다. 농부는 농사의 마무리와 동시에 올 농사구상을 잘해봐야 진짜 농부다.
자산, 흑산도 아가씨도 깜짝 놀랄 봄철 농어는 커다란 입을 벌린 채 봄바닷가를 향한 채 봄볕에 일광욕이다.
고깃배 키를 잡은 지 30년차 어부는 농어의 눈깔에는 물고기 떼의 환영이 헤엄치고 있을지 한참동안 들려다 본다.
뭍으로 향하는 첫 발은 선창의 새봄을 꿈꾸는 항구 목포가 언제 이렇게 노란꽃들이 피어본 적이 있었던가. 부끄럽다. 돌산 유달산 개나리가 내려와 세월호 주변을 둘려앉았다.
봄처녀가 된 해금(奚琴)연주가 신날새씨, 전북 고창 들판에서 핑크빛 날개를 폈다.
새와 나무와 붉은 황토흙과 공기, 그리고 "졸졸졸~" 물소리들이 닫힌 문을 열어 집집마다 찾아가듯 연주한다. 봄들녘에 협연을 위한 켜는 활은 봄풀과 봄미소, 봄볕 그 자체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음 음 음 음 음 음 음", 가수 조동진의 '제비꽃'은 해금으로 만났으니 활짝 웃을 수 밖에 없다.
봄처녀 그의 연주는 명주실을 꼬아 만든 두 가닥의 줄을 타고 공명통에서 울고 웃으며 이렇게 그녀 곁에서 우리 곁에 피어나고 있다.
청주의 자랑 무심천 벚꽃축제에서 만난 사람과 지천의 핀 꽃들은 반딧불이 야광이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 애인에게 건내주기 위해 진달래꽃을 땄을 터, 특유의 향은 매화꽃향기를 시샘하기 충분했다. 흔들 흔들 살랑 살랑 봄꽃이 봄바람나니 사랑하기 딱 좋은 날이다.
북으로 향해 고개를 들어보니 강화도 고려산은 온통 새색시 연분홍 치마폭에 취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남녀노소 절로 콧노래가 흥겹다. 팔순을 앞둔 노모의 볼살들이 아이 볼살처럼 귀엽다.
"직진 꽃구경을 시켜주지 그래냐,.... "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에 아들내외 눈물은 꽃잎으로 덮는다.
2017년 석촌호수의 내려앉은 벚꽃은 그 길이가 호수를 넘어 한강으로 뻗었으니 대한민국 1등 초고층롯데타워에 수를 놓기 충분하다.
조선의 법궁, 경복궁 경내 경희루 꽃은 조선왕조 500년의 품격이다. 500년 후 지금의 격이 코밑을 파고는 향기는 달달하다. 고태스런 한복속 버섯코가 보일라말라 하는 걸음거리마다 구중궁궐을 깨우기 충분하다.
2017 정유년(丁酉年)는 '이씨 왕궁 로얄 패밀리'는 온데간데 없이 500년은 멈췄지만 봄의 전령은 더 이상 함흥치사가 아니다.
언 땅을 녹인 광장은 만인의 평등한 광장으로 틈새 틈새 마다 아기풀, 행운의 네잎클로버는 자라고 있다.
100만명 살생부가 아닌 상생부를 든 서명부는 갈수록 종잇장에 손을 벨 정도로 빳빳하다. "잘가라 핵발전소. 초미세먼지여 안녕" 100만인 서명은 여전히 유효 기간이 남아 있다.
탈핵단체들은 끝나지 않는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핵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초록교육연대, 녹색당,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녹색교통, 그린피스 그리고 신부님, 스님, 목사님이 환경운동가들로 변한 광장은 너그럽다.
봄꽃은 4대문을 끼고 한양도성까지 애워쌓다. 습격이다. 봄꽃으로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만큼 포위됐다. 동녘 동대문에서 서녘 독립문까지, 심우장에서 길상사까지는 주말이면 아이손 잡은 시민들은 꽃밭길을 걷는다.
1000일을 넘길지 모를 500일, 두렵지 않단다. 콘크리트 바닥이 집이 된 강남역 8번 출구, 사람들이 산다. 사람의 한 숨과 분노로 이미 푸른 잔디가 된 8번 출구, 반올림 농성장은 봄맞이 대청소로 새 기운을 79명의 영혼이 담긴 흙고무신을 꺼내고 머리띠를 동여맨다.
이들은 겨우내 추위를 맛아주던 비닐을 걷고, 안팎의 묵은 구호는 낯설다. 아주 아주 영영 낯설고 낡아서 증발하길 소망한다고 두 손을 합장한다.
관계자 왈 "길을 물어 보는 지나가시는 시민 분이 부쩍 많아졌어요."고 한결 부드러웠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노숙농성자들의 눈빛은 더 매서워졌다.
긴 겨울 가뭄에 며칠전에 내린 봄비, 잠시 걱정도 팔자다.
미세먼지가 쓸려내려왔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푸른 빛을 머금은 하늘이 붉은 빛깔 벚꽃과 대비돼 봄날이 더욱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고 뉴혁명의 고장 성남시 분당구 탄천도 어김없이 봄마중이다.
백두대간의 대동맥 오대산 국립공원은 연두빛이 땅으로 밀려온다. 땅은 어머니의 품 지리산을 향해 팔벌려 포근하게 안긴다.
자전거 패달은 꽃가루를 뿌린다. 산지기를 자처한 국립공원 직원들은 환경지킴이들로 봄이 한결 가볍다.
이들이 걷는 산길 흙은 센베이(senbei)를 깨물때 나는 소리다. 흙밟는 소리 귀가 호강한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봄을 알리는 듯 바싹바싹 정겹다.
남산 아래 한옥마을 담벼락에 고개를 내민 꽃들은 영락없이 서울 아가씨 새침데기다. 서울시립대 환경원예 석사과정 학우들이 현장답사차 길을 걷는다. 제법 포즈를 취하니 "찰칵" 한 컷.
초파일을 앞둔 사찰에 달린 알록달록 연등에는 기껏 백팔번뇌는 삼라만상으로 흐르는 강물이 되고 있다.
4월은 잔주름에 펴는 우리 할매들이 알록달록 꽃단장하고 마실나서기 좋은 날이다.
손을 둔 한 권 젊은 언니의 유쾌발랄 프랑스 정복기를 다룬'봄 파리 여행으로 부재 중'는 대문 밖을 나선다. 인천공항의 크다란 유리채광은 안으로 안으로 봄길로 깔아놓는다.
책 내용은 이렇다. 생애 첫 자유여행에서 인생의 재미와 낭만을 찾다! 달려오는 차 앞에서 두 할매는 교대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열심히 팔을 흔들어 댔다. 아무도 안 세워준다! 기가 죽었다.
걸어서라도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친구를 설득하지만 친구는 "미쳤냐?" 한다. 어쩌라고. 대책 없이 지쳐서 다시 길 옆 숲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을 앉아 달려오는 차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젊은이가 차를 세워 놓고 우리를 손짓 해서 부른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니 지독히도 빠른 영어로 뭐라뭐라 하는데, 내가 듣기로는 "자신이 이곳을 한 시간 전에 지나갔다가 다시 왔는데 거기 있는 걸 봤다. 어딜 가느냐? 태워주겠다." 하는 말로 들렸다.
엉겁결에 올라타자 차는 곧바로 쌩쌩 달린다.
그때서야 두 할매 정신이 번쩍 든다. 혹시 마늘 까는 데 데려가는 것은 아니 겠지? 프랑스에도 마늘 공장 있나?
이 와중에 두 할매는 일단 달리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 농담을 주고받았다. "프랑스 남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 풍광은 이발소 벽그림을 보면 바리깡 소리도 졸음이 된 한 대목이다.
4월과 5월 사이 이 땅은 자비와 사랑, 평화의 땅, 그리고 사람들이 좋다.
비록 프랑스로 떠나지 못한 우리 할매들은 들판에 바짝 엎드려 봄나물 캐는 이 봄이 마냥 신난다. 아까워 봄꽃을 꺽지 못한 채 노릇 노릇한 진달래꽃잎으로 두견화전(杜鵑花煎), 배꽃으로 부치거나 이화전(梨花煎)은 금수강산 식후경이 이래서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많다.
세상 속으로 라디오를 켠다 "락락락, 樂絡諾",.... 봄새들은 신났다. 그래서 운다. 잠재울 찬란한 봄도 수 많은 권력자들도 봄길을 걸으며 권력을 구상했을 것이다.
5월쯤이면 정치는 끝이 아닌 또 다시 시작......"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서."
지난밤 난타전에 몸살을 앓았다. 수령 50년쯤 된 목련 아래, 겹겹이 할퀴고 벗겨진 피멍든 흰목련꽃잎은 담벼락 넘어 이웃 사랑방은 온통 뜨겁고 난리법석의 흔적들이다.
서울 근교 최씨댁, 빈 화분에는 주인장은 무얼 심었고 어떤 꽃과 열매가 열렸는지 통 기억하지 못한다.
이 땅에 무엇을 뿌리고 무엇을 거둬야 할까. 봄씨앗들은 꼼지락 꼼지락, 간들러지게 흙으로부터 노크할 시간이 다 됐다. 그래서 여김없이 봄은 '락락락 + 樂絡諾'이다.
<제공 오대산국립공원, 왕보현, 박영선, 신날새, 청주시, 지리산자연밥상, 배준영, 삼척평화, 진영봉, 홍흥주, 헉스뮤직, 흑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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