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 ecoticias.com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스페인 정부를 향해 이베리아 늑대(Iberian Wolf) 보호 상태의 취약성을 지적하며, 현재 시행 중인 수렵 허가를 즉각 제한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최근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Cantabria)주에서 번식기 암컷 늑대들을 사살한 사건을 계기로, EU의 환경 규범을 위반할 경우 법적 제재가 뒤따를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번식기 개체 사살 논란… 브뤼셀의 즉각적인 개입
이번 사태의 발단은 칸타브리아주 당국이 승인한 개체 수 조절 프로그램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라 최근 암컷 늑대 3마리가 사살되었는데, 조사 결과 이 중 한 마리는 임신 중이었으며 나머지 두 마리는 갓 출산을 마친 포유기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제시카 로스발(Jessika Roswall) EU 환경 담당 위원장은 유럽의회에 제출한 공식 답변서를 통해 “모든 수렵 활동은 해당 종의 회복과 양립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번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암컷 개체의 사살은 단순히 개체 수 하나를 줄이는 것을 넘어, 늑대 무리의 사회적 구조를 붕괴시키고 새끼들의 간접적인 폐사를 초래해 종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는 판단이다.
‘부적절’ 판정된 보존 상태와 정보 공백의 심각성
EU의 서식지 지침(Habitats Directive)에 따르면, 스페인 두에로(Duero)강 북부 지역의 늑대는 ‘부속서 V’에 포함되어 제한적인 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양호한 보존 상태(Favorable Conservation Status)’를 유지한다는 엄격한 전제 조건하에서만 허용된다.
문제는 스페인이 브뤼셀에 제출한 마지막 공식 보고서(2013-2018년)에서 이미 이베리아 늑대의 보존 상태가 ‘부적절-미흡(Unfavorable-Inadequate)’ 단계로 분류되었다는 점이다. EU 규정에 따르면 보존 상태가 부적절한 경우 수렵 허가는 극도로 제한되거나 전면 중단되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스페인 정부는 차기 보고 기간인 2019-2024년도분 데이터를 아직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브뤼셀 측은 이러한 정보 공백 상황에서 강행되는 사냥 허가가 과학적 근거를 상실한 정치적 결정에 불과하다고 보고 감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TJUE)의 판례와 ‘예방적 원칙’
EU 집행위원회는 유럽사법재판소(TJUE)의 과거 판결을 인용하며 스페인 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당시 재판소는 “특정 종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 않을 때 수렵을 허용하는 것은 EU 법률과 배치된다”는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의 핵심은 ‘예방적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다. 사냥이 개체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학적 확실성이 결여되었거나 누적적 피해(불법 포획, 로드킬 등)가 우려될 경우, 당국은 수렵 허가를 회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공식적인 사냥 쿼터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폐사 요인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늑대 개체군의 생존력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형태의 사살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논리다.
정치적 결단 기로에 선 스페인 정부
현재 스페인 내에서는 가축 피해를 주장하는 축산 농가와 종 복원을 주장하는 환경 단체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폰도 로보(Fondo Lobo)’ 등 보수 단체들은 이번 칸타브리아주의 사례를 강력히 규탄하며 유럽연합의 개입을 끌어냈다.
브뤼셀의 이번 경고는 스페인 중앙 정부 및 자치주 당국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환경 관리의 책임은 국가에 있지만, 그 집행이 유럽 공동체의 법적 프레임워크를 벗어날 경우 제재 절차(Infringement Procedure)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전문가들은 “이제 이베리아 늑대 관리 문제는 단순한 행정적 기술을 넘어 정치적 결단의 영역으로 들어섰다”고 분석한다. 과학적 데이터가 부재한 상황에서 지속되는 수렵 허가는 EU와의 법적 분쟁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이베리아반도를 상징하는 핵심 종의 미래를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스페인이 제출할 2019-2024 보고서 내용과 그에 따른 EU의 평가 결과에 따라 이베리아 늑대의 운명은 물론, 스페인 정부를 향한 EU의 징계 여부도 판가름 날 전망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저작권자ⓒ 환경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