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상 끌어온 양측 갈등 화해와 포웅으로 아픔 씻어
제2차 조정 중재안, 사과 및 유해화학물질 재발 방지 등
[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한 근로자중 118명이 사망했다.
전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반도체 이야기다. 최첨단 설비로 갖춘 삼성반도체의 생산라인은 이렇게 두 얼굴로 막대한 피해자를 냈고 그의 유가족들과 투병중인 근로자 가족들이 10년 동안 일방적인 싸움은 끝날 줄 몰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에 여전이 남아있는 격동의 아픔들을 치유하고 다시는 이런 불행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22일 희망의 싹을 피웠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백혈병 분쟁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의 제안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도체산업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1100일 가까운 삼성서초사옥 앞 폭염으로 비닐천막을 녹여드는 농성장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
반올림측은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려 10년 이상을 끌어온 양측의 갈등이 마침내 갈등의 벽을 허물고 화해와 포웅으로 아픔을 씻어낼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이날 삼성전자측은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최근 내놓은 공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20일 통보했다. 반올림측은 곧바로 '조정위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위는 지난 18일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에 '2차 조정을 위한 공개 제안서'를 각각 발송했다. 공개 제안서는 상호간 합의점을 찾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양측은 상대측이 조정안을 제시하면 양측이 이를 수락 또는 거부할지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정위는 달랐다. 처음부터 양측 의견을 바탕으로 결론에 해당하는 중재 결정을 내려 이 사태를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로 접근했다.
가장 큰 변화는 삼성전자측이다. 조정위에서 내민 합의안을 내부논의를 통해 늦어도 9월까지 '무조건 수용'이라는 방침을 잠점적으로 한다는 쪽으로 조정위 측에 밝혀왔다.
중재위원회가 삼성전자측에 전달된 '제2차 조정 최종 중재안'은 ▲새로운 질병 보상 방안 ▲반올림 피해자 보상안 ▲삼성전자 측의 사과 ▲반올림 농성 해제 ▲유해화학물질 근로자 피해 재발 방지 ▲안전한 산업재해안전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회공헌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같은 삼상반도체 사태의 막힌 물꼬를 트게 된 배경에는 크게 2가지다. 먼저 올 2월 초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수개월 만에 석방 이후 삼성의 브랜드 회복을 위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의 해외순방길에 동행한 이재용 부회장과 문 대통령과 교감에서 삼성의 글로벌 명성에 되찾도록 하자는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10년 이상 끌어오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사회적 합의의 차원과 유가족 회복, 사망자에 대한 위로, 그리고 삼성의 거듭남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삼성 내부에서 의견이 많이 통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정위원회는 양측의 합의가 이뤄질 경우 오는 10월까지 반올림 피해자 보상을 모두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2007년 삼성 반도체 생산라인 직원 황유미 씨의 백혈병 사망이 계기가 된 ‘10년 분쟁’은 완전히 마무리된다.
특히 최근 고등법원에서 삼성전자가 공개를 거부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와 관련 '영업비밀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령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에 영업비밀이 있다고 해도, 이 자료는 해당 노동자나 삼성전자 공장 주변 주민 등 공공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중요한 정보로 비공개하거나 보호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를 놓고 삼성, 고용노동부는 해당 직업병 피해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지도 않았던 제3자가 예전 자료를 요구한다면 보여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등법원은 정보공개는 법적으로 이해관계자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고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 삼성의 마음을 깨는 결정적인 판결이 됐다.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는 작업자들이 어떤 반도체 생산, LCD 작업환경에서 일을 했고, 작업시스템에 근로자에게 어떤 화학물질들을 취급했으며 이런 물질들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부를 들려다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다.
반올림측은 "삼성이 말로는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를 당사자에게는 주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러질 않았다. 그래서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이 기업이 작업장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감추거나 방해하면 산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해줘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올림측에 노무사로 봉사해온 이종란씨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린 삼성과 싸움이 아닌, 제대로 된 산업재해의 인정과 작업환경의 안전성을 요구했다."며 "삼성의 뜻이 감사하며 더이상 산업재해로 수 많은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몰리지 않고 사지를 떠밀리 않길 바라며 새로운 출발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반올림측과 함께 투쟁해온 삼성반도체 여성 근로자 출신 황유미씨가 사망한 2007년, 그리고 4년이 지나서야 직업병을 인정받왔다. 이에 불복해 항소한 삼성 때문에 결국 7년 넘는 세월을 보내고서야 직업병임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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