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데일리 온라인팀]역대 외국인 축구대표 감독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을 꼽는다면, 아마 히딩크와 슈틸리케일 것이다. 그런 슈틸리케 감독이 우리에 대해 감정이 꽤 뒤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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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홍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내일 있을 이란과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위해 출국하면서 슈틸리케 감독은 인천공항에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7일 기자들에게 "우리 한국팀이 수적인 열세(한 명 퇴장)에도 불구하고, (카타르에게) 3 : 2로 이겼는 데도, 이렇게 비난 여론이 쏟아지다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기분이라면) 차라리 이란과의 게임에 나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라는 쇼킹한 발언을 남기고, 선수들과 함께 이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론부터 얘기해서, 슈틸리케 감독의 화는 이해할 수 있고, 우리들이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칭찬과 격려보다는 비난과 질타가 넘쳐나고 있다. 덕담보다는 악담이 우리들의 일상 언어가 되어버렸다. 어깨동무하고 벗하기 보다는, 서로 삿대질하며 원색 공격하는 일이 우리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나 이외에는 누구도 인정할 수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각자 도생'이 시대어(時代語)가 돼버린 지 오래다.
OECD 35 개국 중 사회갈등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현재 단연 2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건 몇 년 전 통계인데, 새 통계가 나오면, 세계 최고의 사회갈등 국가라는 터키를 앞질러 우리가 1위 자리를 탈환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각종 사회적 갈등을 겪으면서 치르는 비용이 1년에 246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1년 국가 예산의 60%가 넘는 돈을 서로 싸우며 허비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슈틸리케 감독으로선 이 호전적이고 원색적인 한국인들(축구팬들)의 성화에 아마도 사뭇 놀랐을 것 같다. 우리 팀이 잘하고 있을 때는 그 같은 극성스런 성화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때에서처럼, 긍정적 에너지로 폭발하겠지만, 축구를 맨날 잘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는 아마도 잘못하고 있을 때는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게 촌철살인하는 특이한 한국의 문화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을 포함한 유럽 스포츠계라고 해서 왜 비난과 질타가 없겠는가. 그 나라 사람들이라고 우리하고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얼른 보면, 그들이나 우리나 피장파장 엇비슷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도 차(差)'라는 게 있다. '정도의 문제'라는 게 있다. 얼핏 같아 보여도, 거기에는 그만그만한 정도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별로 커보이지 않는 작은 정도의 차이가 궁극적으로는 어마어마한 결과의 차이를 빚어내곤 하는 게 세상사이고, 축구이기도 하다.
우리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일본을 들어 얘기해 보겠다. 일본 프로 야구에 '한신 타이거스'라고 하는 거의 만년 중하위권 팀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한신 타이거스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는 건 잘 할 때가 아니라 못하고 있을 때라는 사실이다. 조금 잘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팬들이 경기장에 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팀의 성적이 저조하고 하위권에 처져 있을 때, 일본의 팬들은 더 많이 경기장을 찾아, 뜨겁게 응원해서 자기 선수들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2006년 일본에 갔을 때 나는 우연히 동경 국립 경기장에서 벌어진 J 리그 나비스코 컵 결승전(제프 지바 : 가시마 앤틀러스)을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 6만명 수용이라는 경기장이 그야말로 완전 가득이었다. 우리 여행 안내자에 따르면, 관람석을 정확히 절반으로 양분해서 양측 3 만명의 응원단(서포터스들)이 자리 잡고 열심히 응원을 벌이고 있었다. 경기는 지바의 2 : 0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전반 몇 분만에 지바가 첫 골을 넣었을 때다. 6만명 전원이 그야말로 모두 열광하는 것이었다. 어느 관중석이 이긴 쪽 관중석인지, 어느 쪽이 진 쪽인지 전혀 분간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고 여행 안내자에게 물었더니, 답이 이러했다. "일본인들은 늘 저렇다. 이긴 팀 관중들은 이긴 팀대로 기뻐서 열광을 하고, 진 팀의 서포터스들은 자기 선수들더러 더욱 힘내라며 마치 이긴 팀처럼 저렇게 열광을 한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일본과 우리가 이렇게 달랐던가?
후반에 또 한 골이 터져 지바의 2 : 0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로 6만명이 한꺼번에 열광의 도가니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결국 경기는 2 : 0으로 끝났다. 그런데 그때까지 6만명의 관중들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게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함께 하고 있었다. 아, 저들과 우리는 이렇게 많이 달랐구나.
더 놀라운 건 그 뒤의 일이다. 경기가 끝난 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축구 경기장 한 가운데에다 즉석 무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이날 경기를 총평하였다. 사회자의 진행에 6만명의 관중들이 하나처럼 웃고 박수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날 경기의 MVP가 소개되었다. MVP로 선정된 선수는 다시 그 무대 위에 올라가서 기쁨과 감사의 멘트를 했다. 그때도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치고 좋아들 했다. 경기 끝난 뒤 이렇게 아마도 30분 정도의 식후 행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6만 관중들이 그대로 자리를 뜨지 않고 함께 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충격의 순간이었다. 우리 두 나라는 외모는 이렇게 닮았지만, 우리들 속에 내장돼 있는 컨텐츠(캐릭터)는 이렇게 천양지차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재확인하는 충격과 부끄러움과 슬픔이란......
우리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서, 세상을 너무 선악 이분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벗이 아니면 적이고, 친구 아니면 원수고, 정답 아니면 오답이고,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디 세상이 꼭 그렇기만 하겠는가. 친구와 원수 사이 그 중간에 얼마나 많은 인간관계들이 더 있지 않겠는가? 세상이 어떻게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딱 부러지겠는가? 이것과 저것 사이 그 중간에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걸 좀 이해할 순 없는 일일까?
오죽했으면, 김수한 추기경이 '네 탓'만 하지 말고, 제발 '내 탓'도 좀 하자고 호소하셨을까?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이 놈의)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라고 발언해서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얼마나 흔들어대고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으면, 오죽했으면, 그 같이 토로할 수 밖에 없었을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취임하자마자 유명한 '쇠고기(광우병) 파동'에 극심하게 시달리고 흔들렸다. 매일 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주도로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항의 행진을 벌이는 성난 군중들이 청와대를 엎어버릴 것 같은 그런 기세로 날마다 나라를 날마다 들었다 놨다 했던 일을 우리 모두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죽기 살기식이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깊은 밤 청와대 뒷산에 혼자 올라가 좌절에 빠진 채 '아침 이슬'을 불렀다든가 들었다든가 했다 잖았던가. 우리는 참 지독했다.
정말이지, 우리는 동시대의 이웃에 대해 좀 더 따뜻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믿고 따라줘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에 대해 관대해져야 한다. 나만, 우리만, 옳다는 생각을 정말이지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도대체 하늘 아래 자기만 '정답'인 사람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축구계 관계자에게 들은 말인데, 외국의 유명 감독들이 한국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했다. 일본은 서로 부임하고 싶어 할 정도로 호감 국가라는 얘기도 들었다.
내일 이란에서 한국과 이란간 A 매치가 있다. 제발, 여러 의미에서, 우리 한국이 꼭 좀 이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기 죽은 슈틸리케 감독이 박수 갈채를 받고, 예의 그 기를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원하지 않는 바이지만, 만에 하나, 우리가 이란에 패배하고, 온갖 비난과 책임추궁이 슈틸리케 감독을 향하게 돼, 그가 감독직, 더 못해 먹겠다, 고 한국을 떠나버리지나 않을까, 진짜 걱정된다. 그래서, 내일은 꼭 이겨야 한다.
우리 한국 사회 문화는 그 극렬성에서 대부분의 선진 나라들과 상당히 크게 차이가 진다. 우선,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바꿔가야 한다. 정말 너무 죽기 살기로 우리끼리 삿대질하며 싸우는 것, 이것 좀 어떻게 개선해봐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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