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판정의 강제 집행력 인정
- 런던 내 스페인 국유 자산 압류 가능성 커져… 국제적 선례 주목

(C) ecoticias.com
스페인 정부가 지난 2013년 단행한 재생에너지 보조금 소급 삭감 조치와 관련하여, 영국 사법부가 글로벌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이번 판결은 국가의 ‘주권면제’ 특권보다 국제 조약에 따른 투자 보호 의무가 우선한다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향후 유사한 국제 중재 판정의 집행 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英 대법원, "조약 체결은 사법 관할권 수용한 것"
현지 시각 2026년 3월 4일, 영국 대법원은 ‘인프라스트럭처 서비스 룩셈부르크(Infrastructure Services Luxembourg)’와 ‘에네르히아 테르모솔라(Energia Termosolar)’가 스페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1억 2,000만 유로(한화 약 1,750억 원) 규모의 중재 판정 집행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스페인 정부는 그동안 "외국 법원이 주권 국가의 자산을 압류하거나 판결을 강제하는 것은 주권면제 원칙에 어긋난다"며 강력히 저항해 왔다. 그러나 영국 대법원 재판부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스페인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협약에 가입한 것 자체가 해당 중재 판정의 집행에 있어 영국의 사법 관할권을 사전에 수용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다.
2013년 ‘재생에너지 대란’이 불러온 부메랑
이번 분쟁의 뿌리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제 위기를 겪던 스페인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에게 약속했던 보조금(발전차액지원제도)을 소급적으로 삭감하는 규정 개정을 단행했다. 이에 스페인의 안정적인 정책 환경을 믿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에너지헌장조약(ECT)' 위반을 근거로 국제 중재를 신청했다.
ICSID 중재판정부는 이미 2018년에 스페인 정부의 조치가 투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스페인 정부는 유럽연합(EU) 법령과의 충돌 등을 이유로 지급을 거부하며 장기 법정 공방을 이어왔다.
런던 노팅힐 부지 등 '상업용 자산' 압류 위기
이번 판결로 인해 스페인 정부는 영국 내에 보유한 상업적 자산을 압류당할 실제적인 위기에 처했다. 이미 2023년 영국 고등법원은 런던의 부촌인 노팅힐(Notting Hill) 지역에 위치한 스페인 정부 소유 부지에 대해 예비적 압류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투자자 측 법률 대리인인 코브레 앤 김(Kobre & Kim)의 리처드 클라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국가가 조약을 통해 주권면제를 포기했다면, 나중에 이를 번복해 집행을 막을 수 없다는 국제적 합의를 재확인한 것"이라며 "올해 말 예정된 최종 심리를 통해 실제 자산 회수 절차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인, 총 2조 원대 배상금 압박… 국제 신인도 타격 불가피
스페인 정부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5년 말 기준, 스페인은 유사한 재생에너지 관련 국제 중재에서 총 28건의 패소 판정을 받았으며, 누적 배상액은 원금 17억 5,000만 유로에 지연 이자 3억 유로를 합쳐 약 20억 5,000만 유로(한화 약 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스페인이 2024년 에너지헌장조약(ECT) 탈퇴를 선언했으나, 조약 내 '생존 조항(Survival Clause)'에 따라 기존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 의무는 향후 수년간 유지된다. 현재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벨기에 등지에서도 스페인 정부 자산에 대한 추심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스페인의 국제적 신인도 하락과 외교적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저작권자ⓒ 환경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