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경주 낭산 일원 발굴현장 설명회
바둑판 모양 도시 설계 계획도시 드러나
[환경데일리 이수진 기자]경주시(시장 최양식)에서 발주,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이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에서 신라 왕실사원의 위엄을 보여주는 대석단(大石壇) 기단 건물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기단 건물지와 함께 회랑(回廊, 지붕이 있는 긴 복도)지, 연못 등에서 금동입불상과 보살입상 7점 등 10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대석단은 크고 정교하게 가공한 돌로 조성한 건물의 단을 말한다.
황복사(皇福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654년(진덕여왕 8년)에 의상(義湘)대사가 29세에 출가한 곳으로,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황복사탑 사리함(舍利函)에서 확인된 명문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을 통해 신라 왕실의 종묘적 기능을 한 왕실사원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당시 삼층석탑의 해체수리 과정에서 금제여래입상(국보 제79호), 금제여래좌상(국보 제80호)도 확인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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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지역 출토유물 |
시는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허가를 받아 문화재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으로 전(傳) 황복사지(皇福寺址)의 실체 규명과 유적의 보존정비를 위한 1차 발굴조사를 2016년 6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일대의 과수원과 경작지(4,628㎡)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효성왕(재위 737~742)을 위한 미완성 왕릉과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 도로 등을 확인했다.
2차 발굴조사는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경작지(4,670㎡)를 대상으로 2017년 8월부터 진행했다. 조사결과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대석단 기단 건물지와 부속 건물지 그리고 회랑 터, 담장 터, 배수로, 도로, 연못 등 신라왕실 사찰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규모의 유구가 발견됐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왕실사원의 위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지는 대석단 기단 건물지이다.
▲조사지역 출토유물 |
대석단 기단 건물지는 내부를 회랑을 돌린 독특한 구조로 이는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은 가람배치 방식이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특수한 용도의 건물이거나 전 황복사지의 중심 건물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는 십이지신상 4구인 묘(卯, 토끼),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가 조각된 석재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
대석단 건물지와 함께 전 황복사지의 중요 전각지로 보고 있다.
십이지신상은 신라 왕릉에서 확인된 십이지신상 탱석과 비교했을 때 더 발달한 형태를 보이며 김유신묘(사적 제21호)의 십이지신상과 더불어 조각미가 뛰어나다. 이 탱석의 도상(圖像)은 김유신묘와 헌덕왕(809~826) 능의 십이지신상보다 앞서며, 제작 연대는 8세기 중후반으로 추정한다. 축조 당시 십이지신상 탱석은 다른 왕릉에서 옮겨와 건물지의 기단석으로 다시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탱석(撑石)은 면석과 봉토가 붕괴하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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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석단 건물지 북편 부속 건물지 |
특히, 금동불입상과 금동보살입상 등 7점의 불상 유물은 전 황복사지가 7~10세기까지 신라 왕실사원으로 유지됐음을 보여준다.
1차 조사와 더불어 이번에 확인된 건물의 배치나 도로 등을 볼 때, 낭산의 동쪽에 해당하는 지금의 보문동 지역도 통일신라시대의 도시계획의 하나인 방리제(坊里制,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설계)에 의한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다.
이번 2차 발굴조사는 통일신라시대 왕실사원과 신라왕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주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앞으로도 황복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유적을 정비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용어설명
신장상(神將像): 부처를 비롯한 불자들을 수호하는 신장(사천왕 등)의 조각상
화상석(畫像石): 장식으로 신선, 새, 짐승 따위를 새긴 돌
치미(鴟尾): 지붕의 장식기와로, 건물의 용마루 양 끝에 올려 건물의 위엄을 높이고,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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